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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그

사랑할까, 먹을까

by leeeel 2020. 5. 25.


- 활동가들이 경기도 이천의 어느 살처분 현장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거대한 구덩이에 가득 찬 수천 마리 돼지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비규환이었다. 구덩이, 내 인생은 그 구덩이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

- 평소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온 돼지들은 구제역에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자연 치유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 우주의 기운을 간직한 야생초, 그 야생초를 먹는 돼지, 그 돼지의 똥으로 키운 작물, 그 작물을 먹는 사람,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순환의 고리였다.

- 생명을 파괴하고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공장식 축산 쪽으로 지금 너무 기울어져 있으니까, 역사적인 압박감 같은 게 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공범자 아니면 주범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동물복지를 구현하려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사육업자의 변명이라기보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 말로 느껴졌다.

- 거대한 폭력을 목격했으나, 일상은 그에 침묵하거나 순응하라고 강요한다면 목격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 공장식 축산은 근본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지구는 개가 벼룩을 털어내듯 결국은 공장식 축산을 털어낼 것이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도 함께 털려나가게 될 것인가이다.

-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돼 있고,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난다고. 생태계는 아주아주 섬세한 그물망인데 공장식 축산과 우리가 버리는 온갖 쓰레기가 이 그물망을 너무 거칠게 찢고 있어. 북극의 빙하가 얼마 안 남았다던데, 다 녹으면 기후는 얼마나 더 무섭게 변할까. 우리가 이 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인간의 욕심을 참회하고 찢어진 그물망을 이어야 해.

- 우리는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지불해야 되겠죠. 우리가 다른 생명을 싸게 활용했다면

- '무엇을 먹느냐'는 오랜 세월 권력의 문제였고, 또한 취향은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윤리와 정의의 문제가 되었고, 이제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 그러나 굳이 고기를 먹겠다면, 최소한 그 과정을 알고 먹는 것이 책임 있는 육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듣는 팟캐스트에서 원헬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말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원헬스가 뭘까.

COVID-19이 전 세계를 좀먹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원 헬스(One Health)는 사람, 동물, 생태계 사이의 연계를 통하여 모두에게 최적의 건강을 제공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건강은 동물과 생태계의 건강과 유관하며 사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듣똑라에서 여러가지 컨텐츠를 추천해주었는데 사랑할까 먹을까도 그 중 하나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황윤은 임순례 감독의 권유를 받아 축산업과 관련된 동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는데 그 영상을 찍은 과정과 감독님의 생각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있다.

감독님은 영화를 찍겠다고 다짐하면서 다큐멘터리의 구도를 돈오와 돈수라는 돼지를 구해서 그 아이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담겠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돼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면서 채식을 하게 되고 공장식 축산업이 우리의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그래서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책에 담고 있다.

 

너무 귀여운 도영이와 돈수 출처: 잡식가족의 딜레마

이건 다큐멘터리의 제목과 동일하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끊임없이 겪게 된다. 고기를 먹는 과정에서 고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단 한번도 보지 않고 겪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을 그런 딜레마다. 고기와 동물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책에서 나오는 내용 중 감독님은 자신이 돼지를 한번도 실제로 보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태어나서 돼지를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돼지가 어떻게 크는지 얼마나 자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돼지는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였다. 한번이라도 내가 그것들의 눈을 쳐다보았다면 난 돼지고기를 그렇게 까지 기쁜 마음으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소가 그랬다. 동네에서 소를 키우는 외삼촌 덕분에 냉동실에는 소고기가 그득했다. 타지에 나와있는 조카딸을 위해 외삼촌은 서울의 냉동실까지 소고기를 채워줬다. 하지만 소는 먹을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무게가 있었다. 한번에 100g 이상 먹지않고 천천히 조금씩만 먹어갔다. 내가 마주했고 가끔 삼촌 몰래 볏짚을 간식으로 주던 그 소들임을 알아서였다. 돼지도 소와 다름이 없을거란걸 애써 무시해왔다.

 

이 책에서는 육식을 끊지 못하겠는 사람을 위해 세가지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세가지가 아니라면, 못들은 척 못 본 척 계속해서 공장식 축산으로 큰 고기들을 먹는다. 그냥 관성이 이끄는 대로 살던대로 사는거다.

첫번째,정부가 인증한 동물 복지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두번째, 생협(생활협동조합)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세번째, 소규모 농장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나는 정부가 인증한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약속이 없는 한 혼자 고기를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락토오보나 비건이 될 결심이 서지 않아서 플렉시테리언을 자처하기로 했다.

 

시골출신인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꼬리표가 달린 음식을 먹었다. 이웃집 배인 ㅇㅇ호에서 잡은 생선, 게, 문어. 할머니 집에서 혹은 ㅇㅇ에서 온 쌀, 외삼촌이 키운 소의 고기 등등 대부분 나를 구성하는 식자재는 내가 아는 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성인이 되고 혼자 살면서 큰 변화가 왔다. 나는 위가 자주 아프고, 중고등학교 때 한번도 난 적이 없던 여드름에 시달리면서 병원을 다녔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 식생활이 문제였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먹은 음식은 어디서 누가 키우고 만든 것이었을까. 이름표가 없는 식자재들은 그만큼 책임감도 없었다. 나도 누가 만든지, 키운지도 모르는 것들을 게걸스럽게 허기를 채우는 기분으로 먹어댔다.

 

임순례 감독님의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주인공이 배가 고파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것에 백번 공감했다. 집에서는 과식이란게 없다. 먹고 싶은 양만큼 먹으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서울의 밥은 나에게 조금 다르다.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고 먹었는데 이상하게 허기가 질 때가 있다.

 

책임감 있게 키운 것들을 책임을 다해 먹자고 결심하였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키운 고기를 더 이상 먼저 나서 소비하지 말자고.

 

더 나아가 공장식 축산은 더 이상 식자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제는 바이러스, 기후변화, 토지 오염 등 축산으로 희생된 지구별 그 자체이다. COVID-19 이전의 메르스, 돼지독감, 조류독감 등등 이미 우리는 수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적극적이지 못한 방안으로 대처했었다. 그리고 이젠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 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는 PC 즉, Post Corona 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순응해야 할 것은 '언택트' 한 삶이 아니라 모든 것들과 '컨택트' 한 삶이다. 인간 외의 다른 것들을 인간과 무관한 객체가 아닌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필요불가분의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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