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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로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leeeel 2020. 5. 21.

 

 

아버지는 아이의 탄생 이후 탄생하는 존재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져본 적이 없는 녀석은 정말 남의 마음을 모르군" 

 

"나랑 닮았니 안 닮았니 하는 것은 애랑 연결된 것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얘기죠." 


내가 애정하던 장소의 이름을 이 영화에서 따왔다고 해서 막연히 궁금하기만 했다. 영화를 볼 생각은 장소에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들릴 때도 하지 않았었는데 장소가 사라진 이 후 문득 그 장소 지기가 왜 거기서 따왔는지, 그리고 지기의 취향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보게되었다.

 

한국에서 드라마를 좀 보고 살았다면 익숙하다 할 수 있는 장치를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다른느낌의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가을동화, 오멘, 내딸 금사월 등을 통해 질리도록 봤을 수도 있다. 심지어 뒤바뀐 아이라는 제목의 나무위키 항목도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클리셰에서 재미만을 취하고 식상함을 버린 것 만 같다.

 

도쿄에 사는 성공한 대기업 샐러리맨 료타와 그의 아내 미도리, 아들 케이타로 이루어진 한 집과 일본 시골에서 (군마라고 한다) 전파상을 하는 유다이와 그의 아내 유카리, 그리고 아들 류세이 (그 밑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다.)로 이루어진 한 집이 있다. 료타의 외동아들인 케이타와 유다이의 장남 류세이는 산부인과에서 그 당시 개인적 문제를 겪고 있던 간호사가 질투에 눈이 멀어 바꾸어 버렸고 그 상태로 6살까지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았다. 그 아이들을 다시 바꿀지 말지를 영화에서는 다루고 있다.

 

신선했던 부분은 대체로 이런 내용의 주체는 여성이다. 어머니의 관점 혹은 바뀐 사람 본인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이 영화는 감독이 자신의 아이와의 일에서 영감을 받아 찍게 된 만큼 남성이 주체가 되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 부분에서 익숙하게 느껴졌던 아이가 뒤바뀌었을 때를 상상했을 때의 반응과 영화에서 료타나 케이타가 보이는 반응이 다르게 느껴졌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자책이 없었다. 이 영화에서도 미도리는 끊임없이 엄마인 자신이 그것도 몰랐다며 다른사람의 눈치, 스스로 자책을 하는데 비해 료타는 전략을 세우고 아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해결사이지 문제의 주체가 아니라는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

 

또한 아이를 바꾸는 것에 대해 엄마보다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미도리는 케이타에게 함께 도망을 가지 않겠냐는 말을 할 정도로 아이를 다시 바꾸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료타는 케이타가 가는 날 다시는 전화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등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칼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면은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인 유다이도 마찬가지라고 느꼈는데 아이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나 자책보다는 보상금의 이야기를 꺼내고 아이를 둘 다 데려가면 안되냐는 료타의 말에도 아내인 유카리보다 한발 늦게 화를 낸다.

 

이런 장면들을 보았을 때도 아버지라는 자리의 미묘하고 희미한 위치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아버지가 되어가기 전까지는 조금 친한 아저씨와 덜 친한 아저씨 혹은 조금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와 잘 놀아주는 아저씨 등등 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모성애 혹은 어머니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의 아버지의 위상이 그 정도 일 것 이라는 이야기다.

바로 그런 부분이 '자신의 아이','피' 에 집착하는 이유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직접 낳지 않았으니 유대가 약하고 양육에서도 큰 파이를 차지하지 않으면 더 유대가 약해지는 것 아닐까.

 

아이를 바꾼 이후에 류세이와의 친밀도를 쌓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료타는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가고, 그렇게 케이타에 대한 부성애도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류세이가 집을 나가는 사건을 통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류세이에게 투영하게 되고 그런 류세이를 위해 캠핑을 간다거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통해 유대를 쌓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세이의 소원은 다시 유다이네 가족을 보고 싶다는 것인 점과 카메라를 확인 하던 중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면서 케이타의 시선을 이해하는 점을 통해 부성애가 발현 되는 것 같다.

 

 

마지막에는 군마에 가서 케이타를 마주하지만 상처를 받은 케이타는 료타를 보고 도망을 가게 되고 갈라진 길에서 끊임없이 료타는 케이타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길이 합쳐지는 순간 그들은 포옹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편적으로는 화해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케이타의 상처가 치유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결로 보이진 않는다. 열린 결말로 영화는 끝나게 되지만 끝 맛이 마냥 달진 않다. 두 가족의 재력차이와 양육관의 차이는 끊임없는 소음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고 이 다시 바꾼 일이 그저 헤프닝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료타는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수업료는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지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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