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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그

[독서기록] 아무튼, 뜨개

by leeeel 2021. 1. 24.

 

안녕하세요 리리입니다.:) 

 

 

아무튼, 뜨개

 

 

밑줄긋기 

- “I Knit So I Don’t Choke People.” 나는 뜨개 덕분에 다른 사람을 숨 막히게 하지 않는다. 오랜 취미 방랑에 종지부를 찍고 뜨개에 정착한 비결이 바로 이 문장 안에 담겨 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니 부끄럽지만, 나는 뜨개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불안감에 못 이겨 주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힘들게 하지 않게 됐고, 그런 면에서 뜨개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이한 건 합정 교보문고에서였다. 『모든 것이 되는 법』이라는 책의 부제는 ‘꿈이 너무 많은 당신을 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 존재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폭력적 시선

 

-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 아마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더 넓어진다 해도 자제할 마음은 없다.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좋아하는 일을 늘려갈 생각이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재미있는 건 뭐든 다.

 

- 그렇게 일부 여성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뜨개는 1970년대에 이르러 완전히 여성스러운 일로 인식되면서 여성에게조차 외면당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남자들이 만든 질서에 순응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 제가 좋아하는 캐나다의 뜨개 작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고 합니다. 고통은 크지 않되 완치까지는 오래 걸리는 경미한 부상을 당해서 의사로부터 6주 동안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는 진단을 받는 상상을요.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뜨개만 할 수 있다면 발목을 접질리는 정도의 가벼운 부상을 상상하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요.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마음 놓고 판타지를 실현했을 겁니다. 경미한 부상조차 없이 말이지요.

 

- 그러니까 소위 남자다움을 부추기는 가부장적 문화가 남성에게 폭력을 조장한다는 결론인데, 사례를 떠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매사추세츠주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폭력에 관한 연구를 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살인, 강간, 폭행 같은 강력범죄의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에게 폭력을 촉발한 동기는 모멸감인데, 이 부분에서 내가 의아하게 생각한 점은 여성은 극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강력범죄로 표출하는 사례가 극히 적다는 사실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에서 유독 남성만 모멸감을 강력범죄로 표출하는 이유는 뭘까. 제임스 길리건은 그 해답을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찾는다.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성별에 따라 모멸감이나 명예로움을 느끼는 상황도 다르다는 것이다. 남성은 폭력성이 약하다 싶으면 모욕을 당하고(예를 들어 겁쟁이는 놀림을 당하고 탈영병은 처벌을 받는다), 폭력성이 강할수록 존경을 받는다(공격적인 선수는 메달을 거머쥐고, 공격적인 영업 사원은 승진을 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한 자산가는 재산을 늘린다). 남성에게 폭력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종의 전략이다. 여성의 경우는 정반대다. 여성은 지나치게 적극적이거나 공격적이면 모욕을 당하고(발라당 까졌다거나 적어도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면 명예로워진다(참하고 기품 있는 며느리를 떠올려보자).

 

-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타인이 뱉은 공기를 내가 마시고, 내가 뱉은 공기를 다시 그가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뜨개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완화하고 성취감을 높인다는 의학 통계는 많습니다. 캐나다에서는 공예 치료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뜨개를 활용합니다. 투병 중인 환자의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 금연 중인 사람의 의지를 북돋기 위해,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해 뜨개를 가르칩니다. 미국에서는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과 교도소에 수용된 재소자들의 사회화를 돕기 위해 뜨개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 뜨개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지요. 그저 내면을 질서 있게 할 뿐입니다. 손끝에서 바늘을 타고 걸어 나온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잊게 해주고,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집중할 힘을 주는 것이 뜨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으니까요.

 

감상

서라미작가님은 글마저 뜨개 처럼 뜨셨다. 뜨개는 사실 직물과는 다른 종류다. 직물을 두가지의 실을 교차하여 한개의 천을 만들지만 편물 즉 뜨개는 말처럼 한개의 실로 이어 천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서라지 작가님의 글 역시 뜨개라는 한 주제로 글을 아주 길게 떠서 한개의 책으로 엮은 것 같았다. 코로나 얘기를 해도 책이야기나 번역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가 뜨개와 맞서지 않았다. 뜨개라는 큰 주제 안에서 그 이야기들이 엮어져 나가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됨에 따라 나도 뜨개를 시작했다. 목도리, 모자, 수세미 정도는 뜨는데 이번에는 겨우내 입을 니트를 뜨겠다고 이 책에 나오는 그 책 (김대리의 쉬운 탑다운 니트 뜨기) 도 사고 문어발을 하기 위해 양말 뜰 직물과 바늘도 같이 샀었다. 뜨개를 시작한지 두어달, 아직도 내 니트는 팔이 없는 조끼 상태이지만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좀 삐뚤뺴뚤하고 실수를 한 곳이 있지만 신경쓰지 않고 완성하기로 했다. 나에겐 옷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행위가 책에 나온 그대로 우울을 완화하고 성취감을 높여주기에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풀지 않고 꾹 참고 완성하기로 했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수와 장애물이 우릴 기다린다. 우리가 우리의 작업이 하찮게 여겨지는 순간도 분명 온다. 이때 꾹 참고 그 행위를 지속하며 완성하는 것도 힘이다. 완성하고 나면 대부분 느낀다. 내 생각보다는 잘 나왔다고. 

 

이 책 역시 어려움을 해결애주지도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또 한발자국 나가야겠다고 느끼게 해줬다. 오늘도 집에서 책을 읽고 뜨개를 해야겠다. 

 

 

 

한마디

뜨개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지요. 그저 내면을 질서 있게 할 뿐입니다. 손끝에서 바늘을 타고 걸어 나온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잊게 해주고,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집중할 힘을 주는 것이 뜨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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