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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로그

장례난민 (Tombstone Refugee, 2017)

by leeeel 2020. 8. 22.

 

 

 

장례난민 (Tombstone Refugee, 2017)

오랜만에 본 단편영화였다.

가난한 사람은 탄생도 죽음도 힘이 든다.

올해 초 사랑하던 외할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장례 기간은 가족이 애도하는 기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는 바는 경험에서 나오게 되며 그것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 지 또 한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줄거리

러닝타임은 20여분 정도로 짧은 단편 영화인데 생각보다 이야기 전달이 잘 되었다.

돈이 없어 죽은 다빈이(첫째딸)의 엄마는 죽어서도 돈 때문에 고생이다. 죽음의 존엄성이 돈에 따라 판가름 난다는 것이 우리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생활고로 인해 주소지를 바꾸지 못했고 그로 인해 화장 비용이 많이 들것이라 하자 아빠는 화장을 포기하고 불법으로 매장을 하려 한다. 다빈은 주소지로 가면 저렴한 비용에 화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빠에게 주소지로 가서 화장을 하자고 설득하게 된다. 

가는 길에 아빠는 무전취식을 시도하다 잡혀가게 되고 (그 차도 말을 하지 않고 빌려온 차였다) 다빈이와 한솔이 만이 엄마의 관과 차에 남겨지게 된다. 다빈은 엄마를 화장시켜주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다 사고를 낸다. 그 후는 굉장히 동화처럼 변한다. 관에서 엄마가 나오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 직접 나뭇가지를 주워 화장을 한다.  

 

 감상

보면서 답답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일렁였다. 14살의 다빈이는 제 나이보다 어른스럽지만 어렸다. 자기 나이로는 크지 못한 아이처럼 보인다. 철없는 아빠와 어린 동생을 갖고 있는 다빈이는 고된 삶 때문에 어른의 눈을 갖게 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제 나이보다도 어린 선택으로 자꾸만 하게 된다. 사람은 곤경에 처하면 더 기지를 발휘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큐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게 된다고 한다. 다빈이도 다빈이의 아빠도 상식적인 면에서 자꾸만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고 생각이 든다. 다빈이의 아빠가 어이없게도 경찰에 잡혀 간 이후에 다빈이는 엄마를 어떻게든 화장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눈물겹다. 엄마의 관에서 죽은 엄마와 같이 누워있던 한솔이가 엄마한테서 이상한 간장같은 냄새가 난다 할 때 빵에 들어 있는 산소 흡수제를 엄마의 관에 넣는 다빈이의 모습이 귀엽고 안타깝다. 그 이후 엄마가 다시 일어나면서 동화같은 일이 일어나고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엄마의 화장이 이루어진다. 가난한 엄마는 죽어서까지 아이들을 걱정하게 되는 것. 가난은 이런 것이다. 드라마의 가난은 그리고 예능에서 가난을 흉내 내는 것은 사치로운 부자의 취미로 보여질 정도이다. 나는 죽음에서까지 인간의 존엄성이 자본으로 인해 나눠지는 것에 놀라웠다. 물론 형편에 따라 일반 관과 더 좋은 관 혹은 더 좋은 수의 같은 것만이 재산이 죽음에 가져오는 척도라고 생각했다. 돈이 없어 묻거나 화장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장이 열린 것이다. 특히나 책임 나이가 아닌 어린 아이에게조차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가난. 엄마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눈물 한방울 마음 편하게 흘릴 틈이 없었다. 그게 가장 마음에 남았다. 먹먹한 목소리로 울지조차 못한 체 나지막히 엄마에게 '그러게 그걸 알면 그러지말지' 라던 너무 빨리 커버린 다빈이가 남았다. 

 

 

대사

- 엄마가 괜히 죽어가지고 우리 딸들 고생만 시키네

- 그러게 그걸 알면 그러지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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